이와쿠라 사절단과 보빙사, 일본의 운명과 조선의 운명.


이거슨 1860년~1863년의 이와쿠라 사절단. 특명전권대사 이와쿠라 토모미와 그 일당들!!





그리고 이거슨 저 위의 사진보다 20년 후 1883년, 보빙사 정사(正使) 민영익과 그 일당들. 이들이 現천조국 황제 체스터 A 아서를 만나 전통 큰절을 올린 이야기는 NY Times 기사에도 남아 있음. (1883년의 기사가 온라인이라니;;)

민영익은 이후 보스턴을 찍고 유럽 각국을 돌아, “나는 암흑에서 태어나 광명 속으로 들어가 보았고 이제 다시 암흑으로 되돌아왔다.” 라는 말을 남기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60년대 말쑥한 양복을 갖춰 입고 프랑스 장관들을 만나 세련된 서양식 인사를 나눈 이와쿠라 사절단
80년대 전통 한복을 갖춰 입고 미쿡 대통령을 만나 큰절을 올린 보빙사


이후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짐작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으리라.

by ουτις | 2009/11/04 23:46 | 심심풀이 | 트랙백 | 덧글(4)

조선의 세금, 조선의 농민

조선의 세금

이 글은 다소 기묘한 글이다. 이 글이 단순히 조선의 세금을 논하기 위한 글이라면 이런 평가를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글은 결국 조선의 농민 생활을 논하고 있다. 글을 따라가면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비해서 그다지 높지 않은 조세부담을 지고 있는 전근대 농민을 마주칠 것이다.

그런데 그 농민은 대체 어떤 농민인가? 이 글에는 그 농민이 자작농이라는 가정이 (아마도 비의도적으로) 숨겨져 있다. 국정교과서를 비롯한 조선까;;;들이 민생에 대해 지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지주전호제인 상황에서, '소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이 글은 조선까;;들의 지적에 대해서 얼마나 유의미한 대답일까?

대답의 가치는 조선의 자작농 비율이 얼마나 되었는가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 농민 대다수가 자기 땅을 가지고 있었고, 소작농이라는 것이 소수의 불행에 그친다면 위의 글에서 '조선 농민'을 자작농으로 설정한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째서 반계, 성호, 다산 등 경세치용 학파의 이름난 실학자 치고 농지개혁론을 들고나오지 않은 학자가 없는 것일까?

부자들의 한없이 넓은 토지들이 서로 맞대어 있어 가난한 사람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는 형세가 되었다.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게 되었다. 악랄한 모략을 품은 자들이 토지를 독차지하는 반면 양민은 가족을 이끌고 유랑하다가 끝내 머슴이 될 수밖에 없다.

위 글은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나오는 말이다.

다산이 '호남 여러 고을에서 소작농이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을 엄히 금하기를 청함'이라는 글에서 주장하기로는, 호남 농민의 70%가 소작농, 25%가 자작농, 5%가 지주였다.

여전론을 주장하면서 묘사한 모습 역시 상당히 처참하다.
이제 호남지방의 관습은 지주가 먼저 그 수확의 절반을 빼앗아가고 높은 베개에 누워 있는데 농민들은 이미 그 절반을 잃어버렸을뿐만 아니라 남은 절반가운데서 종자를 제하고 또한 국가조세까지 삭제 당한다. 왼편에서 뜯어내고 바른편에서 갉아내니 남는 것이얼마나 있겠는가” 라고 하였으며 “국가의 조세는 맥법을 가장하고 있으나 실제내용에 있어서는 역시 5/10를 떼어가고 국가가 또한5/10를 수탈하여가니 농민들은 무엇을 먹고 살겠는가? 여기에 우리나라 농민들이 중국의 농민들보다도 훨씬 더 곤궁하게 된 원인이있다.

동학농민운동에서 마르크스가 '감자 부대'에 비유했던 농민들마저도 들고 일어나서 요구했던 사항은 농지의 균분이었다.


이글루스 역밸에서 가끔 마주치는 '조선 작은 정부론' 역시 작은 정부라는 말을 쓰기 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으니, 과연 '작은 정부'라는 말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북유럽, 서유럽 및 뉴딜 미국이 달성했던 중산 사회는 모두 '큰 정부'하에서 가능했다.  미국의 경우 작은 정부의 등장과 빈부격차의 악화는 우연이건 필연이건 같이 등장했다. 현대의 '원조' 작은 정부론은 사실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논리이다.

물론 이것이 조선이 '큰 정부'였다면 조선 민초들의 민생이 나아졌으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위의 예시들과 달리 조선의 정부는 '다수의 통치'를 받는 정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의 힘이 위축되었을 때 가장 큰 수혜를 받는 것은 하층민보다는 기득권층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일 뿐이다. 더구나 예송논쟁의 결론이 국왕은 사대부와 다른 차원의 존재가 아니며 사대부의 제1가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선이 토지에 부과한 낮은 세금이 70%의 농민을 위한 것일지, 5%의 지주층을 위한 것일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호포법과 같이 양반을 포함하는 세금 징수의 경우 조선이 망하기 직전, 최후의 최후에가서야 실행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자면 더욱 그렇다.

10년이 지나서 국정교과서가 어찌 생겨먹었나를 잘 기억해낼 수는 없으나, 위의 논점들은 국정교과서 내의 것들로 추려낸 것들이다.16세기 이후의 지주전호제의 확대, 대동법, 균역법의 등장에 따른 종곡이나 기타 투자 비용의 소작농에 대한 전가 등이 당장기억나는 것들인데, 요새 교과서가 얼마나 바뀌었을지, 어떤 내용이 더해지거나 빠졌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원글은 그냥 국정교과서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의 눈으로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이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조선에 대한 내 태도를 pro와 con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야만 한다면 나는 con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500년을 지속했을지언정 실패로 끝난 왕조에 대한 올바른 기본 자세는 비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00년을 지속했다는 것을 자랑하는(또는 칭찬하는) 논리는 결국 어떤 시스템의 평가항목에는 지속가능성과 자기수복능력이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도 그렇다.

500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을 칭찬함과 동시에, 근대라는 새로운 파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을 평가 기준에 넣지 않으면 안 되며, 나는 후자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by ουτις | 2009/11/04 00:04 | 심심풀이 | 트랙백 | 덧글(16)

Auf Wiedersehen!!

꽤 늦었지만 아마도 너무 늦지는 않게 간신히 회복!!

놓아버릴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에 만나요~!

by ουτις | 2009/10/10 18:31 | 트랙백 | 덧글(1)

레이더스 1~5



한국만화의 후원인이 되고자 나름 애쓰는 중인데, 번뜩이는 뭔가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데 그걸 마무리 지어서 (polishing)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뭔가가 5%쯤 아쉬운 경우가 많아서 심히 안타깝다.

속죄 열망에 대한 시각, 훌륭한 그림 등이 돋보이지만, 원래 가진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만큼 플롯을 정돈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5권은 특히 루즈하고 이전의 참신한 부분을들 너무 많이 놓친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

by ουτις | 2009/10/09 22:58 | 읽고, 듣고 보고, 생각하다. | 트랙백 | 덧글(0)

마초이즘에 대해 -1-

어느 마초가 꿈꾸는 양성평등의 길 - 1 -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얼마 전에 본 나루토의 마초이즘에 대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남녀 성대결 병림픽에 몇 번 참가하다가 벌어진 어떤 사건이다. 가끔 '자연인 r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 블로그만을 가지고 나를 판단했을 때 나는 어떤 인간으로 보일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데, 상당한 꼴마초로 오해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건도 그 징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매듭님의 글에서 쓰고 있는 '레알마초'라는 개념에 대해서 나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마초 본연의 모습으로서의 마초라기보다는 마초의 여러 형태 중 가장 좋은 것을 취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약자 보호'라는 측면이 마초이즘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본질적으로 마초이즘은 해로울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마초이즘을 훨씬 느슨하게 정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마초이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을 약자라고 규정하고 자기 스스로가 남성이라는 것을 기뻐하는 어떤 생각들의 집합이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느슨한 정의이다. 따라서 이 조건을 만족하는 생각들은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여성을 약자로 규정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결과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가?

나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에게 여성이 약자라는 것은 신체적, 그것도 근력에 대한 문제이고 이것은 여성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추위에도 여성이 더 강하고 평균수명도 더 길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근력에만 머물지 않으며, 신체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여성은 약하고,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존재이고 종합적으로 볼 때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의해서 마초들이 보이는 행태는 '여성이 약자'라는 명제의 이해와 1:1 대응되지 않는다. 약자는 보호의 대상이라고 보는 경우에는 여성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는 보호이다. 그러나 이 보호가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성질의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집을 뛰쳐나가는 장면은 무언가 마초에게도 공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른 것은 다르게'라고 하는 차등의 논리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마초 역시 충분히 차별적이며 억압적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그 억압이 꽤 달콤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억압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한편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강자가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이다. 사회적진화론자는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더구나 여성과 남성이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므로, 각종 진화론자들 역시 개입할 여지가 있다. (나는 진화론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마초이즘은 누가 주창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를 거쳐서 형성된 것이고, 어쩌면 남성이라는 동물의 자연적인 성향일 수도 있으며, 최소한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자연적이라는 말이 정당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에 대해 시몬 보부아르같은 인물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것과 달리, 마초이즘의 중요인물이라는 개념은 매우 어색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마초이즘이 완전하게 극복가능할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그보다는 마초이즘을 무해화無害化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

70년대 삘의 전투적 페미니스트들은 남녀간의 성차는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적 학습의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화성남자 금성여자'로 대변되듯이 대세는 바뀌었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은 남녀간의 성차性差를 부정하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면서 그것을 우열로 파악하지 않는 평등이다. 남성입장에서 이것에 도달한 한 상태가 해롭지 않은 마초이즘일 것이다.


이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여럿이 있는데, 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의견의 다양함을 생각한다.

'여성은 약자인가?'
'여성이 약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여성이 동등한 의무와 권리의 주체인가?'
'여성이 보호의 대상이라면 그 반대급부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들은 아직 남성 사이에도, 여성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바닥에 깔려있는 논리들을 헤집어 보기 전까지 그가 마초인지 페미니스트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여성이 약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전투적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그것은 여자도 군대 보내라는 꼴마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온건한 페미니스트와 온건한 마초들은 여성을 약자라고 인정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고 아끼는, 내 기준에서 해롭지 않은 마초에 대해서 모든 여성이 감사와 애정을 느낄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전투적페미니스트들은 남녀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 징후로 여길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꼭 불행한가? 꼭 그렇지는 않다고 여기는 여성도 종종 보았고 이 사람들이 어디가 떨어지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Y대를 나와서, S대 졸업후 미쿡의 지잡대 박사과정 남편과 결혼해서 유학간 고등학교 동기가 있었다. 그녀가 고1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자기 꿈이 현모양처라고 했던 순간은 내게 미묘한 강렬함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면 양성평등이라는 것은 대단히 인위적이고 아슬아슬한 것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흑인들이나 식민지 시민들과는 달리 남녀 사이에는 분리주의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섞여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각 가정의 지붕 아래를 비롯한 수없이 많은 환경에서 완력에서 열세이고 공격 성향이 적은 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권리를 실질적으로 누리고 산다는 것은 극히 아슬아슬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추구할 가치가 충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양성평등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내가 양성평등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이라는 게 싫은 정의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알량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이 알량한 정의감이 세상사에 커다랗고도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하므로 그것이 그다지 모멸로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도 알량한 정의감을 가지지 않은 세상이야말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세상이다.

이보다 더 개인적인, 어떤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할 이유는 '완전히 활짝 핀 꽃을 보는 즐거움'이다. 한 인간이 타고난 무엇인가를 발휘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이다. 재능을 가진 한 인간이 어떤 이유로 사회에게 좌절을 강요당해서 자신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아까운 낭비가 될 것이다. 주변에 자신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 '자아성취'라는 단어를 캐캐묵은 개념상의 단어가 아니라 눈앞의 실재로 보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활짝 핀 여성은, 억압에 위축되고 쭈그러진 여성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울 것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마초이즘의 또다른 측면 -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을 기뻐함 - 또한 중요하게 여긴다. 남성이기 때문에 타고난 자질들을 최대한 발현시켰을 때, 나 자신부터가 굉장히 즐거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여성들도 기쁘게 할지 모른다.


나는 결국 어떤 공감대가 형성이 되고, 난립해 있는 여러 입장이 비교적 압축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때까지 많은 소요와 혼란이 있겠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세금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도 여전히 마초라는 말이 쓰이고 페미니스트들이 있겠지만, 양자 모두 상대의 존재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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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으로 제가 성대결 병림픽에 참가하게 되면, 제 의견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제가 이런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공감하셨으면 합니다. 꼴마초 소리 듣는 분들은 아마 저랑 비슷한 입장은 아니실 겁니다. (반대하시는 분들은 사실 크게 신경 안 씁니다.)

by ουτις | 2009/10/07 02:08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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