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문제 떡밥

유통기한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니까 그냥 씀.

여성 블로거들의 주장에서 일단 강조되는 것은 노출은 자기 만족!!! 이라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노출은 남성의 시선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인데, 굳이 진화심리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뭔가 이상한 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게 꼭 내가 마초이스트라서 그런 걸까? 내가 내 나름의 방식으로 마초이즘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모든 노출이 자기 만족이라고는 어느 여성 블로거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은 일단 연예인. 언젠가 맥심 잡지에 나온 레이싱 모델의 경우에도 노출이 상당한 부담을 주는 행위였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른바 대세 모델 중 하나였다. ~_~) 이효리 이후로 매년 수위를 더해가는 여가수들의 노출이, 섹시 컨셉으로 인해 여가수 판의 다양성이 질식되어가는 이 상황을 자기 만족으로 설명할 것인가? 이효리 이후에 갑자기 한국 여성들의, 한국 여가수들의 에고가 폭발하기라도 했다는 이야기인가? 내가 듣기에는 퍽 이상한 이야기다.

여성의 노출이 '남성의 시선을 끌겠다는 의도'와 무관할 수는 없다. 손담비가 'cry eye'의 파워 댄서 이미지를 포기하고 섹시 컨셉으로 재등장하게 된 것도, 소녀시대가 Gee에서 결국 대세를 따른 것도, 원더걸스가 애초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섹스 어필로 시장을 공략한 것도 열광하는 오빠팬, 삼촌팬과 무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닭과 달걀의 선후를 가리는 것이다. 과연 이 노출 열풍은 미디어와 사회가 먼저 시작했는가 개인이 먼저 시작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아... 노출 패션을 즐기는 어느 사람이든 아마도 기성복으로 그 패션을 추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보그를 비롯한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무엇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기준을 세울 것이다. 올해 25cm 내외의 마이크로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거라는 경향신문 기사를 본 것이 쌀쌀한 봄철이었다. 대량 생산과 매스미디어의 시대에 육체에 대한 이 선망이 각 개인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으며, 이 과정이 남성과 무관하다는 이야기도 결코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노출 패션을 즐기는 여성 개인이 남성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남성의 시선을 신경쓰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마릴린 먼로가 노마 모턴슨이었던 시절에 몸매가 드러나는 꽉 끼는 스웨터를 입자 남성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꽉 끼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서 개인이 '나는 내 만족을 위해서 노출한다.'는 것을 극구 부인할만한 이유도 없기는 하다. '거의 모든 여성이 그렇다.'는 말에 대해서는 매우 미심쩍게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그 과정에 남성이 무관하다는 말은... 솔직히 말하자면 대단히 당황스러운 말이 된다. 길게 썼지만 사실 간단한 이야기다.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끼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회 전체에 의해서일 수밖에 없으며, 그 사회의 절반이 남자인데다가 현실적으로 그들이 더 권력에 가깝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공평하게, 남성이 스스로를 어떻게 가꿔야 하느냐는 문제 역시 여성의 시선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여성의 시선을 배제하고 남성들끼리만 결정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남성들은 좀 더 솔직한 편이다. 가끔 이에 관련된 논쟁에서 '그럼 남자들이 운동하는 것도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건가요?'라는 접근 자세를 보는데, 그다지 유용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남성용 웨이트트레이닝 서적을 살펴보면 '이 운동을 열심히 하면 여성에게 잘 보일 수 있다.'는 구절이 거의 절대로 등장한다. 몸매 가꾸기에 있어 여성의 시선이 전부라고는 할 수 없어도 매우 중요한 동기 중 하나임을 인정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논쟁에 있어서 본질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노출과 성범죄가 무관하다.'는 류의 주장 역시 통계적으로 잘못되었고 불행히도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주장이다. 여름철에 성범죄는 증가한다.

성범죄는 상당히 포괄적인 말이다. 간단히 나눠도 강간, 강간치상, 단순한 성추행 등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상황을 감안하면 훨씬 다양하다. 이중 강간의 경우 가장 일반적인 경우가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면식이 있는 사이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고 이런 종류의 범죄라면 계절과 무관하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향을 받는 종류의 성범죄가 있고 그것은 결과로 나타난다.

우범지역에서의 아리랑치기라면, 그곳이 우범지역임을 명확히하고 그 길을 가급적 피할 것을 권하는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gender의 문제가 개입되게 되면, 그곳이 우범지역임을 부인하고 그것으로 마치 사태가 해결된 양 행동하도록 주문하는 의견이 등장할 뿐더러, 그 주장이 지지를 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무엇이 해결되었을까?

by ουτις | 2009/06/29 01:14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1) | 덧글(13)

Linux in Top 500

osnews기사의 제목은 Top 500 List Dominated by x86, Linux

리눅스의 비율은 77%로, 이것은 CentOS, RHEL 등을 제외하고 센 것이다. wow! kudos!!

by ουτις | 2009/06/26 00:44 | 심심풀이 | 트랙백 | 덧글(2)

스포츠와 인생

스포츠 관람의 재미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인생의 압축판'을 보는 재미인 것 같다. 육체를 이용한 활동이라는 특성상 일반인들보다 일찍 정점에 달하고 쇠하기 때문이다.

축구라는 세계 안에서 나는 이관우나 다이슬러같이 불운에 의하여 좌절되는 재능들을 보았고, 황선홍이나 호나우두처럼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을 극복하고 명예로운 말년을 맞이하는 영웅들을 보았고, 황선홍이나 바지오의 경우처럼 과도한 기대에서 기인한 비난을 보았다. 호나우딩요처럼 몇 년간을 태양처럼 빛나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지단처럼 꾸준한 선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스포츠 관람은 무척 지적인 취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by ουτις | 2009/06/12 00:38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 | 덧글(0)

화해의 시도

조문객 추방에 대한 감상..에 대한 리플들;;을 읽다가 한 생각.


나는 지난 6년 남짓한 기간동안 노사모를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그들 역시 달라질 수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처음에는 나도 링크된 글의 글쓴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리플에 대한 감상은 꽤 다르다.

불과 한 달 후에는 다시 실망해서 진저리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마음속에서 화해를 시도해보련다.

by ουτις | 2009/05/26 10:09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 | 덧글(0)

우리가 그에게 지웠던 짐

이 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의미로 구분되지 않은 채 혼재되어 쓰이고 있다. 한 가지는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에게 우리의 비전을 맡겼고, 그가 좋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랬던 사람들을 말한다. 다른 한 가지는 대한민국 국민들 전체를 의미한다.


언젠가 이글루스에서 88만원 세대에 대해서 평하기를, 386세대가 87년 6월에 겪은 것 같은 '연대에 의한 승리'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한다. 그 투쟁 자체의 치열함과 대통령 직선제로 대표되는 절차적 민주주의 쟁취라는 커다란 보상 양쪽이 모두, 우리 세대는 경험하지 못한 강렬함이었을 것이다. 비록 386세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거나 사실 싫어하는 부분도 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부분들은 인정하고 존중할만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유사한 기억도 없을까? 그에 대해서 나는 2002년 월드컵과 같은 해의 노무현 후보 당선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20대라는 한 세대가 그에게 열광했고, 기성세대들의 후보를 이겼다. 87년 6월만큼 강렬하지 않았을지언정, 그것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기억이다. 그것을 후회하는 사람에게든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에게든, 그 일 자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사람에게든 그렇다. 그리고 사실은 참여정부의 좌초가, 386세대만큼 자신들의 세대가 거둔 성공에 대해서 자신만만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에게 지운 짐은 과도했다. 사회의 거의 모든 모순, 국가의 거의 모든 현안, 각종 집단의 거의 모든 의견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가 있었고 그것이 달성되지 않을 경우 실망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오히려 반대편에서 지운 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찍은 우리의 대표가 그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비젼, 우리가 가진 희망, 우리가 가진 의견을 부정당하는 대표가 바로 그였으며, 언론, 야당, 여타 사회의 기득권 세력의 필사적인 반격과 비이성적 비난을 온 몸에 감당해야 했던 것도 그였다.


결국 그는 깔려죽었다.


내가 너무나 슬픈 것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짐을 나눠지는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의 대상이 누군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내 마음을 잘 알게 된다.

링컨을 '성공한 원칙주의자'로서 롤모델로 삼고 싶었다던 그에게, 키팅 선생에게 바쳐지기 전 링컨의 서거에 바쳐졌던 시를 바치면서 마친다.



O Captain My Captain
a poem by Walt Whitman

   

O Captain my Captain! our fearful trip is done,
The ship has weathered every rack, the prize we sought is won,
The port is near, the bells I hear, the people all exulting,
While follow eyes the steady keel, the vessel grim and daring;
But O heart! heart! heart!
O the bleeding drops of red,
Where on the deck my Captain lies,
Fallen cold and dead.

O Captain! my Captain! rise up and hear the bells;
Rise up--for you the flag is flung for you the bugle trills,
For you bouquets and ribboned wreaths for you the shores a-crowding,
For you they call, the swaying mass, their eager faces turning;
Here Captain! dear father!
This arm beneath your head!
It is some dream that on the deck,
You've fallen cold and dead.

My Captain does not answer, his lips are pale and still;
My father does not feel my arm, he has no pulse nor will;
The ship is anchored safe and sound, its voyage closed and done;
From fearful trip the victor ship comes in with object won;
Exult O shores, and ring O bells!
But I, with mournful tread,
Walk the deck my Captain lies,
Fallen cold and dead.

by ουτις | 2009/05/24 22:37 | 리버럴의 앙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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