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자살과 평준화라는 이름의 거짓말

나는 지난 수 십년간 이루어진 교육 평준화의 기반이 되는 생각들 대부분은 사려깊지 못한 사고에서 나온 허구라고 본다. 사실 이것은 민주당 정권만의 것이 아니며, 박통 시절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의 문제도 사실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우수한 영재들에게 어떻게 그들에게 알맞는 교육을 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가장 먼저 던질 질문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등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모두가 똑같아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평등인가? 모두가 오른손을 들고, 대한민국 유니폼을 지정해서 그걸 입고 다니고, 길을 다닐 때는 다같이 줄 잡아서 발을 맞추고 다니면 평등해질 것인가?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병장으로서 내 의견은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설사 평등해진다고 하더라도 저것이 우리가 원하는 평등의 모습일 수는 없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등은 서로가 차이를 존중하는 평등이다.

아이들이 학원에 찌들지 않고 뛰어 놀 수 있는 사회는 좋은 사회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뛰어놀아야만 하는 사회는 별로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온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사회이다. 유년기와 소년기의 많은 시간을 학업에 보내는 것이 정말로 모든 아이들에게 싫은 일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내 주변을 보더라도 유년기 내지는 소년기에 세운 뜻으로 학업에 열중한 친구들이 꽤 있다. 공자가 학문에 뜻을 세울 나이라고 본 것이 15세이다. 조선시대를 보아도 상당히 어린 나이에 교육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다음에 지적할 문제는, 어린 나이에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능력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은 음악이나 여타 예술이 그렇다. 거장까지 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기교육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타고나는 것이든 개발되는 것이든, 그 성패가 결정되는 시기는 상당히 빠르다. 그 외에는 수학과 물리도 내가 볼 때는 그런 영역에 속한다. 20세기에 노벨 물리학상 탄 사람들의 대부분은 20대에 이미 상당 부분을 이룬 사람들이고, 40세 넘어서 이룩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탄 예가 없다. 수학의 필즈메달은 한 술 더 떠서, 40세 이후에 이룩한 것에는 아예 수여하지 않는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앤드류 와일즈 교수도 이 제한에 걸려서 필즈 메달을 타지 못했다.

이런 거창한 사람들 말고 조금 더 현실적이고 내가 직접 본 것들을 가지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서 학원을 다녔을 때 과고 출신 아이들 역시 과고 입학 이래 수학 1,2,3등의 순위가 변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포스텍에 입학해서 만난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을 보아도 물리와 수학에 있어서는 대학교 이전에 받은 교육이 굉장히 많은 것을 좌우한다. 공학에 있어서는 성실성이 더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영역에서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대학 입학 전까지 보통사람을 위한 교육만을 받다가 대학에 진학해봐야 이미 시기가 늦는다. 다른 나라라고 다를 것도 없다. 흔히들 미국 학생들은 수학을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보통 학생을 기준으로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미국에서 귀국한 동창을 볼 때, 어디까지나 보통 학생의 경우이다. 수학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으로 볼 때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오히려 더 심오한 학문을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의 평등 사회 지향의 국가들은 어떨까? 프랑스는 대학까지 평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고등학교 때부터 낙제, 월반제가 있음은 물론이고 대학 입학 능력 시험 수준도 상당하며, 어느 나라에도 없는 그랑제꼴같은 수퍼엘리트를 위한 대학도 있다. 북유럽 국가들 역시 내가 아는 한 중등교육부터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게 시간표를 조정하며, 이것은 우리같은 '다 같은' 교육과는 매우 다르다. 다시 말해서 학교를 평준화한 유럽 국가들 역시 영재들을 위한 교육에 매우 많은 것을 투자한다. 이런 국가들은 대한민국식 평준화를 지지하는 예시로 매우 잘못된 것들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공교육'을 제공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필요한 사교육이 존재한다. 나는 81년생이고, 우리 학년은 과고, 외고의 본고사가 폐지된 첫 학년이었다. 그 결과 내가 중3때 과고를 가려는 아이들 중 내신이 조금 떨어지는 아이들은 올림피아드 입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들을 위한 교육은 공교육 내에서 제공되지 않았다. 내 또래의 강남권의 상위권학생들은 Best학원에 대해서 기억할 수도 있다. 그래도 전교에 공부 좀 한다고 알려진 애들이 밤새서 두들겨 맞아가며 공부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경우의 사교육은 사실 나로서는 전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저 부분을 사교육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먼저 효율에 있어서도 사교육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교육은 결국 수요자가 원하는 교육을 하게 되어 있다. 수요자가 원하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로 원하는 교육인데,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exploit이다. 예를 들면, 토익 점수를 요구하는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영어 능력이다. 그러나 토익 학원은 토익 고득점을 효율적으로 올리는 법을 강의하게 되어 있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한 이 미스매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평등과 공평의 관념 역시 중요하고, 사실은 이것도 효율의 한 부분이다. 재능을 타고난 아이는, 집안 형편에 관계 없이 그것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이미 똑똑한 아이보다 부유한 아이가 대학에 가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공평이 무너진 사회는 갈등을 내포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많은 비용을 들게 한다. 공평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 또한 교육은 정말로 그 교육을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효율적이다.


정말로 초등학생의 성적비관 자살을 막기 위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이다. 인맥으로서의 학벌을 넘어 파벌로서의 학벌이 존재하는 사회, 출신 학교가 인간의 등급을 매기는 사회, 공대생은 의대 못 간 대학생이고 문대생은 법상대 못 간 대학생인 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공교육의 틈새는 대한민국의 사교육의 매우 일부만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한영외고라는 학교를 나왔고, 학교 수업은 내가 생각할 때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나 자신과 내 동창들을 돌아보면, 일반고 학생들보다 결코 사교육을 적게 받은 것은 아니다. 대원외고를 졸업한 87년생 사촌동생 역시 마찬가지다. 과고를 나왔던 친구들을 봐도 주말같은 때를 이용해서 학원 다니고 과외 받고 다 했다. 민사고 2학년생인 사촌동생도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민족사관고 학생들도 학원 다닌다. 공교육을 아무리 향상시켜도 이 사회에서 사교육은 절대 줄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교육은 한정된 학벌 간판을 내 아이에게 달아주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의 경쟁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내신 반영비율로, 수능 난이도로, 그 외의 어떤 교육의 수단으로 이 문제를 시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허구일 뿐이다. 이것이 해결되는 한, 영재교육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쉬운 수능으로 사교육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허구이다. 나는 00학번으로 한 번, 01학번으로 한 번 수능을 쳤었는데, 이때는 지금까지 중 수능이 가장 쉬운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사교육이 없어졌는가 하면, 지금은 메가스터디로 알려진 손주은 강사의 강의를 등록하기 위해서 문자 그대로 밤을 새서 대기하던 시기였다.

내신 반영 비율로 사교육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허구이다. 수능 대상의 학원 강의가 내신 대상으로 바뀔 뿐이다. 원하던 것이 이것이란 말인가?

석차를 등급으로 나눠서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결국 더 높은 석차를 받기 위한 사교육이 1등급을 받기 위한 사교육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수능 점수를 flat하게 만들면 결국 학생의 당락을 결정하기 위해서 다른 요소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구술 시험이면 구술시험, 우수성 입증 자료면 우수성 입증자료 등, 그것을 위한 사교육이 당연히 등장한다. 교육 정책을 입안한다는 사람들이 이 간단한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이 정말 놀랍기만 할 뿐이다.

그나마 사교육을 줄이기라도 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 사교육 전면 금지와 단속일텐데, 80년대 과외 금지 시대에 장성 집안 자제 과외로 한 몫을 챙긴 무용담들을 듣다보면, 결국 돈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과외를 돈과 권력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일 뿐이다. 평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이것은 아닐 것이다.


박노자가 묘사한 오슬로를 보자. 대학교수와 버스 기사가 비슷한 연봉을 받으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는 우수한 아이에게 무슨 교육을 시키든 다른 아이의 부모들이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초딩이든 고등학생이든 성적 비관으로 자살할 일도 아마도 지금보다는 적을 것이다. 이것만이 해결이다. 이것은 사회의 문제이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by ουτις | 2008/10/30 23:57 | 리버럴의 앙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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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ecorum at 2008/10/31 04:18
미국에 와서 재밌다고 느낀 저 중 하나가
출신 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기저기다 붙여 놓는다는 점.
차 번호판에 UC Berkeley Alumni를 자신있게 붙이고
(Stanford에서도!!) Stanford 티를 입고 다니고, Harvard 후드 입고
자기 학교를 자랑스럽게 알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여기도 Law, Medicine은 꼭 그걸 또 쓴 티를 입고 다닌다)
그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인듯. "아 거기 들어간 우수한 친구구나" 끝.
우리나라에서 서울대 티를 자신있게 입고 다닐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그나마 연고대가 학교티를 입고다니는듯.
근데 그게 결국은 사회 분위기에 따른 결과인듯 싶음.
"다양성의 인정"하는 곳에서 내 자신의 표현은 여러 표현 중 하나가 되지만,
"한줄 세우기"식 사고를 하는 곳에서는 내 자신의 표현이 곧 남이 자기 보다 잘나거나 못남을 표현하는 일이 되기에 쉽게 출신학교 같은 "업적"을 얘기할 수 없게 되는듯.
Commented by ουτις at 2008/10/31 23:08
푸핫;; 카이스트 한복판에 '포스텍 졸업생'이라고 써붙인 차가 돌아다니는 건가?

"다양성의 인정"하는 곳에서 내 자신의 표현은 여러 표현 중 하나가 되지만,
"한줄 세우기"식 사고를 하는 곳에서는 내 자신의 표현이 곧 남이 자기 보다 잘나거나 못남을 표현하는 일이 되기에 쉽게 출신학교 같은 "업적"을 얘기할 수 없게 되는듯.

하려던 말이 이거 맞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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