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세금, 조선의 농민

조선의 세금

이 글은 다소 기묘한 글이다. 이 글이 단순히 조선의 세금을 논하기 위한 글이라면 이런 평가를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글은 결국 조선의 농민 생활을 논하고 있다. 글을 따라가면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비해서 그다지 높지 않은 조세부담을 지고 있는 전근대 농민을 마주칠 것이다.

그런데 그 농민은 대체 어떤 농민인가? 이 글에는 그 농민이 자작농이라는 가정이 (아마도 비의도적으로) 숨겨져 있다. 국정교과서를 비롯한 조선까;;;들이 민생에 대해 지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지주전호제인 상황에서, '소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이 글은 조선까;;들의 지적에 대해서 얼마나 유의미한 대답일까?

대답의 가치는 조선의 자작농 비율이 얼마나 되었는가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 농민 대다수가 자기 땅을 가지고 있었고, 소작농이라는 것이 소수의 불행에 그친다면 위의 글에서 '조선 농민'을 자작농으로 설정한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째서 반계, 성호, 다산 등 경세치용 학파의 이름난 실학자 치고 농지개혁론을 들고나오지 않은 학자가 없는 것일까?

부자들의 한없이 넓은 토지들이 서로 맞대어 있어 가난한 사람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는 형세가 되었다.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게 되었다. 악랄한 모략을 품은 자들이 토지를 독차지하는 반면 양민은 가족을 이끌고 유랑하다가 끝내 머슴이 될 수밖에 없다.

위 글은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나오는 말이다.

다산이 '호남 여러 고을에서 소작농이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을 엄히 금하기를 청함'이라는 글에서 주장하기로는, 호남 농민의 70%가 소작농, 25%가 자작농, 5%가 지주였다.

여전론을 주장하면서 묘사한 모습 역시 상당히 처참하다.
이제 호남지방의 관습은 지주가 먼저 그 수확의 절반을 빼앗아가고 높은 베개에 누워 있는데 농민들은 이미 그 절반을 잃어버렸을뿐만 아니라 남은 절반가운데서 종자를 제하고 또한 국가조세까지 삭제 당한다. 왼편에서 뜯어내고 바른편에서 갉아내니 남는 것이얼마나 있겠는가” 라고 하였으며 “국가의 조세는 맥법을 가장하고 있으나 실제내용에 있어서는 역시 5/10를 떼어가고 국가가 또한5/10를 수탈하여가니 농민들은 무엇을 먹고 살겠는가? 여기에 우리나라 농민들이 중국의 농민들보다도 훨씬 더 곤궁하게 된 원인이있다.

동학농민운동에서 마르크스가 '감자 부대'에 비유했던 농민들마저도 들고 일어나서 요구했던 사항은 농지의 균분이었다.


이글루스 역밸에서 가끔 마주치는 '조선 작은 정부론' 역시 작은 정부라는 말을 쓰기 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으니, 과연 '작은 정부'라는 말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북유럽, 서유럽 및 뉴딜 미국이 달성했던 중산 사회는 모두 '큰 정부'하에서 가능했다.  미국의 경우 작은 정부의 등장과 빈부격차의 악화는 우연이건 필연이건 같이 등장했다. 현대의 '원조' 작은 정부론은 사실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논리이다.

물론 이것이 조선이 '큰 정부'였다면 조선 민초들의 민생이 나아졌으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위의 예시들과 달리 조선의 정부는 '다수의 통치'를 받는 정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의 힘이 위축되었을 때 가장 큰 수혜를 받는 것은 하층민보다는 기득권층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일 뿐이다. 더구나 예송논쟁의 결론이 국왕은 사대부와 다른 차원의 존재가 아니며 사대부의 제1가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선이 토지에 부과한 낮은 세금이 70%의 농민을 위한 것일지, 5%의 지주층을 위한 것일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호포법과 같이 양반을 포함하는 세금 징수의 경우 조선이 망하기 직전, 최후의 최후에가서야 실행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자면 더욱 그렇다.

10년이 지나서 국정교과서가 어찌 생겨먹었나를 잘 기억해낼 수는 없으나, 위의 논점들은 국정교과서 내의 것들로 추려낸 것들이다.16세기 이후의 지주전호제의 확대, 대동법, 균역법의 등장에 따른 종곡이나 기타 투자 비용의 소작농에 대한 전가 등이 당장기억나는 것들인데, 요새 교과서가 얼마나 바뀌었을지, 어떤 내용이 더해지거나 빠졌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원글은 그냥 국정교과서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의 눈으로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이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조선에 대한 내 태도를 pro와 con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야만 한다면 나는 con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500년을 지속했을지언정 실패로 끝난 왕조에 대한 올바른 기본 자세는 비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00년을 지속했다는 것을 자랑하는(또는 칭찬하는) 논리는 결국 어떤 시스템의 평가항목에는 지속가능성과 자기수복능력이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도 그렇다.

500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을 칭찬함과 동시에, 근대라는 새로운 파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을 평가 기준에 넣지 않으면 안 되며, 나는 후자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by ουτις | 2009/11/04 00:04 | 심심풀이 | 트랙백 | 덧글(16)

트랙백 주소 : http://routis.egloos.com/tb/426877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FELIX at 2009/11/04 00:26
그러데 저때의 소작농이라는건 자기 농토가 있으면서도 소작을 부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16년 통계에 따르면 자작농 20.1%, 자소작농 40.6%, 소작농 36.8%, 지주 2.5%로 나옵니다. 다산이 말한 내용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크게 다르지요. 중요한건 저 자소작농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지요. 참고로 이 60%가 넘던 자작, 자소작농은 일제 1932년에느 42%로 감소하고 다들 소작농으로 몰락했지요.

또한가지, 실재로 농민들이 항의한 대상은 지주보다는 고을의 수령인데 그게 단순한 착취의 문제보다는 행정상의 문제가 큽니다. 흉년이 들때도 있고 풍년이 들 때도 있는데 정전법상 국가가 수취하는 세액은 동일합니다. 매년 협상을 통해서 지대는 조정할 수 있지만 수령이 수취하는 결세는 언제나 동일하니 흉년때마다 농민들이 죽어나는 것이지요.
Commented by ουτις at 2009/11/04 00:33
사실 정확한 이야기는 제대로 된 통계 자료가 있을 때 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 앉은 자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없네요. 제대로 된 자료를 찾을 시간도 아마 없을 것이구요.

완전 소작농을 37%로 본다고 해도 여전히 자작농 20%보다는 많은 수치이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치는 아닐 것 같습니다. 다산의 글은 매우 비판적인 어조에서 씌여졌고 말씀하신 비율의 자소작농이 존재했는데 그들의 생활이 자작농만큼 여유로웠다면 그런 어조는 아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정전법이 문제가 되었다는 자체가 병작반수 외에도 세금이 다시 소작농에게 떠넘겨졌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죠.
Commented by FELIX at 2009/11/04 00:38
그 대신 지조가 낮아집니다. 아래 리플에서 설명했습니다.
Commented by FELIX at 2009/11/04 00:38
그리고 전세의 경우에는 18세기 중반 들어서면 종곡과 함께 농민이 부담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대신 소작료가 점점 내려갔지요. 제일 피크가 1985년즈음인데 1740년대의 1/4 수준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기록시기의 전세는 지주가 아닌 농민 부담이었습니다.
Commented by ουτις at 2009/11/04 00:50
다산이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가 풀린 것이 1818년이고 보면 위의 묘사는 19세기 초엽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표현은 병작반수를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FELIX님께서 어떤 근거 자료를 보여주신다면 납득하기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FELIX at 2009/11/04 01:16
이 리플의 출처는 김건태,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중 1743~1927년 남평문씨 계답 1두락당 조 수취량에서 따온 것입니다. 19세기 초엽이라면 1두락당 8~12두정도가 평균치로 1743년에 비해 평균 1/2수준이네요.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04 13:40
ουτις 님// 말씀하신 사례들이 대부분 대지주가 집중된 '호남'지역의 사례라는게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대동법 시행 당시에도 호남시행을 두고 "호서에 비해 호강한 자들이 많아 반대가 많다."라고 언급될 정도이고, 김용섭 선생님의 선행 연구에서도 대토직집적이 이루어진 지방으로 종종 연구되는 곳이니깐요.
Commented by ουτις at 2009/11/04 14:16
전세를 소작농에게 떠넘기는 문제가 전국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삼남지역의 문제이기는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 지역은 조선의 인구 밀집지역이기도 했었구요. 그러나 저는 이 분야에 공부가 일천한 사람이고 이것이 무책임한 문제제기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제 생각을 바꿀만한 정보를 마주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제 문제제기,

'비교적 가벼운 토지세를 부담하는 조선 농민'이라는 이미지를 위해서 조선 농민을 자작농으로 설정한 것이 적절한가?'

라 는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16세기 이후 지주전호제의 확대는 널리 알려진 문제제기이며, 조선 후기 경세치용학파의 눈에 삼남지역 소작농들의 각종 부담이 5할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였다는 점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물론 도조와 타조의 문제 등의 농민에게 유리했던 부분들도 더 감안할 필요가 있겠지요.

조금 더 더한다면 노비 문제도 제기해 볼 수 있겠지요. 조선 후기에 인구중 비중이 급감한다고는 하지만, 이영훈교수같은 사람의 조사에 의하면 임란직후 30~40%에 달하던 시점도 있었으니 조선사 전체를 놓고 본다면 피지배층의 생활상을 그리는데 무시할만한 비중은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배송중인 이헌창교수님의 경제통사가 도착하면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04 15:28
말씀하신대로 소작농-자작농의 문제제기는 타당하며 저 역시 그러한 '자작농'이 조선사회의 대부분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 '자작'의 규모가 문제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고 싶습니다.

선학이신 김용섭 선생님의 연구인 『조선후기농업사연구 1권』의 양안연구에 따르자면 자작농 가운데서도 대구의 경우는 25부(負) 이하의 빈농층이라고 할만한 이들이 64%, 의성의 경우는 57%, 전주의 경우는 53%를 차지하고 있으니, 당시 '원칙 상의 자작농 수'는 많겠지만, 다수의 '자소작농'은 자기 토지가 있다해도 사실상 '소작농'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04 15:42
다만 토지소유-경작형태가 자소작농(자기 토지가 적은), 소작농이라고 해서 소작농에게 일반적으로 가해지는 인식..즉 '지주의 착취'가 있었을 것이라는 틀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도조의 문제 등도 있지만, 소작농 가운데서도 농우, 농기구, 종곡 등의 여유..즉 '경작능력'이 되는 이들은 상당한 경쟁력이 있었고, 이를 통하여 지주로부터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었으니깐요.
(김용섭 선생님의 농업사연구 2권에서 다루는 경영형 부농도 이러한 예라고 할 수 있겠죠.)

해방후 관북지역의 사례(김성보의 연구)에서는 당시 농기구 보유율만 해도 12%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니, 이러한 '경작능력'의 차이는 사실 소작-자작의 여부 못지 않게 당시 농민의 생활과 부담은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한 주요한 문제로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유형원, 정약용등이 토지개혁을 주장한 것에 비해서, 윤휴, 우하영, 서유구 등은 이러한 경작능력이 없어 불리한 조건으로 지주에게 계약을 맺거나 심지어는 쫓겨나 떠도는 유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전제-둔전제의 실시를 주장한 것은, 당시 농민의 생활과 부담에 대한 대책-대안이 '심화'된 결과라 봅니다.)

Commented by ουτις at 2009/11/04 16:24
저도 '농민들의 뼛골을 빼먹는 악질 지주들'같은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니까요 ^^;;;

이를테면 강항의 간양록에 '조선사람이 왜인보다 키도 머리 하나가 크고 씨름을 붙여도 이기는데 전쟁에서 밀린 것은 조정의 잘못이다.'라는 구절을 볼 때, 일본에 비해서 조선 농민의 생활에 여유가 있었으리라고 추정하는데는 저도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파파울프님의 글에서 지주-소작 문제가 단 한 번도 중심문제로 거론이 되지 않은 것의 한계를 지적했으면, 그걸로 이 졸문의 역할은 다 한 것으로 생각하고 만족합니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04 16:29
그렇군요. 말씀하신 사항에 대해서 저 역시 공감합니다. ^^

다만 저 역시 ουτις님께서 '지주의 수탈'을 강조하시려는 요지는 아니었다고 봅니다만, 소작-자작의 구분만으로는 당시의 농민의 실상을 고려하기엔 불충분하다는 논의를 전개하려다 보니, 저도 모르게 비약한 것 같습니다. 혹여라도 비약으로 인해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Commented by ουτις at 2009/11/04 23:51
별말씀을요.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迪倫 at 2009/11/05 03:55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위의 덧글/답글에서 언급하신대로 문제제기라고 하지않으셔도 충분히 의미있는 글이라고 생각욉니다. 사실 뭐라도 덧붙여볼까 싶었는데, 얘기들이 대충 마무리가 되신 것 같아 그냥 독후감만 남깁니다.

대체로 얘기는 18-19세기를 대상으로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다만, 농민의 생활수준을 고려하기 위해서라면 세율뿐 아니라 이자수준이 고려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 25%라고 하신 자작농도 계절적 소득 변동을 보완하기 위해 곡식을 차용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위의 들꼿향기님이 언급하신 반자작 반소작농의 경우 이자수준으로 인한 부담이 실제 생활수준을 고려할때 중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자료를 찾지못해서 죄송합니다만, 19세기 농촌의 이자수준은 상당히 상승하는 추세였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게다가 곡식뿐 아니라 농기구, 종묘와 같은 물품에 대한 대여에 대한 이자비용도 감안하면 조선 후기 농임의 생활은 상당히 부담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인근 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 수준은 이와는 또 다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16-17세기만 해도 조선과 일본 간의 쌀 소비량이 차이가 난다는 얘기가 여러군데 보이고, 이영훈 선생의 글이었던가 18세기에도 조선의 일반 평균 쌀 소비량을 일본보다 높게 잡고 계산을 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각 지역(국가)별로 어느정도 열량을 섭취할 수 있었는지를 비교하는 연구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지금 거의 기억으로 덧붙이는 얘기들이라서 죄송합니다. 그냥 흔한 "지나가다" 정도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관심있으시면 출전들을 나중에 확인해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ουτις님의 좋은 글들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Commented by ουτις at 2009/11/05 12:28
방문 감사합니다. 최초 제가 쓴 글에서 명확하게 하지 못해서입니다만, 이 글이 충분하게 의미있으려면 농민부담의 어디까지를 계산에 넣을 것이고 어디까지를 넣지 말아야 할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즉, 제 글은 '일본의 공7민3과 비교하자면 조선의 조세는 가벼웠다'라는 평가에 대해 '지주전호제를 제외한 국가 수취만을 논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반문입니다. 농지=봉토였던 일본과의 비교가 원글과 같은 식으로 가능하려면 조선 전기의 과전제가 유지되었어야만 하니까요. 그러나 그 기간이 조선을 대표할 정도로 길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배층을 먹여살리기 위한 피지배층의 부담'을 계산하는데는 원글에서 언급한 국세뿐만 아니라 각종 지방관청의 잡세와 함께 지주전호제가 언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환곡과 종곡, 농기구 대여료, 이자 등에 있어서는, 자세히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넣지 않는 것이 일본과의 비교를 위해 나을 것 같구요. 여기까지 감안한 어떤 결론이 있어야만 제 글이 '질문'이 아닌 '나름의 완성된 체계를 가진 의미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럴 능력과 여력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

방문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迪倫 at 2009/11/05 13:06
제가 요며칠 감기가 심하게 걸린 상태로 아까 글을 읽고 덧글을 달았더니 지금 다시 보니 오타도 많고 얘기도 중구난방이었네요. 죄송합니다...-_-;;

음 저는 우선 ουτις님이 "지주-소작농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기하신 것 자체가 의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자수준의 문제는 금전적 대출에 대한 이자를 의미했다기 보다 환곡이나 종곡 등에 대한 이자수준을 의미했던 것으로, 실제 지방관청이나 지주를 통해서 실제 "세금"과 동일한 부담을 주는 것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실제 포함시켜야 오히려 일본 등과 실질적 농민의 생활수준 비교를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했던 것이구요.

뜬금없이 쌀 소비량 얘기를 했던 것은 (원글에서처럼) 생활 수준을 비교할때 세금 하나만을 비교하는게 아니라, 그런 각종 부담을 제하고 농민에게 해당되었던 열량 섭취량이나 기대수명 등의 요인들을 비교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역시 감기로 머리와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이렇게 '지나가다'같은 소리만 적어 놓고 말았습니다. (감기에 핑게를 대는 것으로 대충 무마해보려는...)

그나저나 답글도 감사하고 계속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