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언젠가 일본한테 한 번 더 크게 당할 것 같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2차대전 군국주의 잔재를 거의 청산 안 하고 그대로 기득권층이 유지되었다는 게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전혀 인식들이 없다.


독일의 경우 하켄크로이츠 문양 자체가 법적으로 사용금지 되서 가끔가다가 2차대전물에서 이거 쓰다가 발매금지도 먹은 게임이 한 둘이 아니고, 완전히 상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체를 게임으로 묘사 금지시켜놓다시피 해서 FPS의 적들을 다 로봇으로 고치고 있다. 그러는 판에 지금 일본이 2차대전 때 잔학행위 다 부인하면서 욱일승천기를 미화하고 2차대전을 로망으로 선전하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차이인지, 이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작 독일에서는 나치에 대한 것을 굉장히 터부시하는데 반해서 일본이야말로 나치독일 미화가 얼마나 쩔어주는가? 꼭 주인공으로는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악당으로 나와도 적어도 카리스마형으로 나올 때가 많고. 이러니 일본인들이 '우리도 전쟁의 피해자' 드립을 치고 있어도 일본 안에서는 그게 왜 이상한지를 사람들이 모르지. '게걸음으로 가다.'같은 상황쯤은 되어야 전범국가에서 '이제 사과 할만큼 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와도 될까말까한 것을.


외고 지망 동생 얘기는 좀 많이 웃겼는데, 외고라는 데를 졸업한지 10년째 되는 입장에서 그게 정신 제대로 박힌 것과 어느 정도의 상관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그 사람보다 내가 훨씬 잘 알 것은 확실하다. 그 경우 여동생은 '정신 제대로 박힌 아이도 헤타리아 볼 수 있다.'의 예시가 아니라 '어린 아이는 헤타리아에 홀릴 수 있다'의 예시였어야 할 것을... 외고 다니는 여동생도 아니고 가려는 여동생이 있을 나이면 글쓴이 본인 나이도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결국 literal한 파시스트 시절 미화를 두둔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한테 파시즘 드립을 치고 있는데, 이거야 말로 된장 옆에 놔두고 똥찍어먹고 광경을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절대 쿨게이는 못 될 거 같다. 안 될거야 아마.

by ουτις | 2009/10/05 05:11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 | 덧글(8)

남자 친구가 변했어요에 대한 또 다른 비유? - 투자와 수익

어떻게 보자면 그저 '잡은 고기에게 떡밥을 왜 주나효?'의 변명일 수도 있긴 하다.


대략 IT 버블 시대에 낚여서:-) 공대를 다닌 사람들은 당시 IT 벤쳐들의 무절제에 대해서 한 두 가지 에피소드는 들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요한 동기 중 하나가 투자와 수익에 대한 착각이었다고 한다. 코스닥 거품에 의한 스탁옵션의 가치 상승을 멋모르는 젊은 벤쳐인들이 돈을 '번' 것으로 생각하고 흥청망청 써버린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투자에 의한 자산의 증가였지 소득은 아니었던 것을 이들은 몰랐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업이 소득을 벌어오지 못한다면, 투자는 다시 빠져나갈 운명이었던 것이다. 기업이 소득을 벌어들인다 해도, 이것은 초창기의 투자였지 지속적으로 벌어들일 소득은 아니었던 것이다.


마음에 든 여성에게 남성은 초창기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연애 싸이클에서 볼 때 시간, 관심, 돈 등 모든 것을 가장 아낌없이 퍼붓는 시기는 이때일 것이다. 문제는 여성이 받는 이 자원들이 소득이 아니라 투자라는 것이다. 남성들 역시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가끔 꽤 참을성을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볼 때, 육체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권위의 형태로든 이 시기의 투자가 결국은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이 투자는 본질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 시기에 들이는 성의는 남성이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을 보통 넘어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둘의 관계가 어떤 궤도에 오를때까지 한시적으로 들이는 공이다.


어느 기업이 공장을 새로 열 때 당장 돈을 벌어들이기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땅값, 건설비, 설비 등을 사들이는 동안 얻는 것 없이 돈먹는 하마 역할을 한다고 해도 미래를 보고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중에 뽑아낼 수 있다고 믿고 아낌없이 자원을 투자하는 것'을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엄청난 낭패를 볼 것이다.


어장관리에 대해서 논하자면, IT 버블을 타고 투자자들의 돈을 울궈낸 다음 장사를 접어버리는 나쁜 기업인들도 많았다.

by ουτις | 2009/10/03 01:12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 | 덧글(2)

문제의 그 뉴스.

아는 사람은 알테고 모르는 사람한테는 소개해주지 않을 거임.

뉴스 보고 마음이 확 상하는 일이 가끔 있는데, 이건 내 인생의 worst 인 거 같다. 하루종일 기분이 아주 나쁘다.

사형반대론자인 나조차도, 이런 생각이 들어버린다. 사람을 공격하는 개나 맹수는 결국 안락사하게 되듯이,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이 되지 못한 괴물들이 사회에 섞여서 인간인 척 하고 있을 때, 그들로부터 나머지 구성원을 보호해야지 않겠는가 하는.


다시 한 번 라이프니츠와 볼테르가 생각난다. 과연 선하고 전능한 신이 존재할까?

by ουτις | 2009/09/28 20:50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 | 덧글(6)

꿀벅지 외전 : 성희롱의 기준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이라는 말에 대해

꿀벅지 파문에 대해서 긴 글을 하나 더 쓸 뻔 했지만 잘 참았다. 병림픽의 월계관을 쓸 자는 '식은 떡밥 끝까지 붙들고 물어지는 놈'이라는 평소 지론이 큰 도움이 되었다.


상당히 많이 쓰이는 말 중에 '성희롱의 판별은 본인이 수치심을 느끼는지 여부'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 말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의아하다. 이 말은 애초에 폐기되었어야 했다.


빅토리아 시대 엄숙주의의 희화화된 초상으로 leg는 자주 인용된다. 풍성하게 하체 모양도 안 보이는 치마를 입고, leg이라는단어만 들어도 경끼를 일으키고, 연주중인 그랜드 피아노 다리까지 가리는 집요함에 현대인이라면 충분히 웃을 수 있다.

이 시대의 어느 귀부인이 타임슬립이라도 해서 21세기로 넘어왔다고 치자. 한 시간도 못 되서 마주칠 현대 여성의 미니스커트와 핫팬츠와 맨다리를 드러낸 그랜드피아노-_- 등에 대해서 경끼를 일으키고 있는 이 부인을 위해서 현대 사회를 바꿔줘야 할 이유는없다. 그것은 그 귀부인의 사정이다. 죠리퐁이나 소나타3 헤드라이트를 보고 이상한 망상을 하는 것이 어느 아줌마의 개인 사정인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200년 후 세계적으로 엄숙주의가 강화될지 완화될지는 알 수 없다. 완화된다면, 현재 여성들이 성적 수치의 대상이라고 여기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미래인들은 지금 우리가 빅토리아 시대를 돌아보듯이 그저 희화화의 대상으로 여기고 웃을 것이다. 만일 강화된다면 현재의여성들이 괜찮다고 여기는 것들조차 미래의 인류에게는 성적으로 타락했던 한 시대의 단면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느 누가 감히 개인의 자격으로 '무엇이 성적 수치심의 대상이고 무엇이 아니다.' 라고 잘라 말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누가 그토록 무식하고 용감하단 말인가?


법에서 쫓아야 할 두 마리 토끼는 구체적 타당성법적 안정성이다. 다시 말해서 법적 판단은 일반 상식에 부합해야 하지만, 일반상식에 부합하기 위해서 법조문 해석에 임프로바이제이션을 과도하게 섞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각 상황에 대한 법적 판단이 어떻게 될지를 전혀 모른다면 인간은 불안해서 어떻게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형사적으로 개인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죄형 법정주의이다.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려면 그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조항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범죄가 되지 않으며 그 행위는 처벌받을 수 없다.

어떤 행위가 잘못된 행동이라고 아무도 알려주지도 않고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에 대해서 처벌을 하겠다고 누군가 나선다면, 당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억울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을 가장 명확한 언어로 표현한 것은 롤즈일 것이다. 그는 정의의 요건으로 사회적 합의와 함께, 그것이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을 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성희롱은 당하는 사람의 수치심 여부'라는 말은 납득되어서는 안 될 논리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성희롱인지 아닌지 여부를 내가 알 수 없다면, 그것이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더 나아가 법적 제재까지 받을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그 기준은 결코 개인의 주관이 아니라 일반 상식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사자의 성적 수치심 여부'라는 말에 일말의 진실도 없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담긴 일말의 진실은, 성희롱 여부를 판별하는 데 있어서 구체적 타당성을 달성하는 것이 대단히 복잡한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대다수의 남성들도 인정할 것이다. 어떤 특정 행동을 했느냐, 특정한 어휘 등을 사용했느냐의 기계적 판단이 아니라 각 상황에 따른 폭력성과 억압의 존재 여부를 따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대단히 ad hoc한 성질, 그것이 '당사자의 성적 수치심 여부'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일말의 진리이다.


그 타협점은 최초의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쓰는 것이 될 것이다.

'성희롱의 판별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아, 여성으로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지 여부'

사실 여전히 싸울 거리는 많다. 저기서 말하는 일반인에 남성과 여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여성만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나는 당연히 남성이 포함된다고 주장할 것이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외 오만가지 논쟁 가능한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적어도 최초보다는 훨씬 나은 판별식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꿀벅지라는 단어의 무례함과 성희롱 여부는 그냥 다수결에 부치면 될 일이었다. 기분 나쁜 사람이 많으면 쓰지 말기로 정하면 될 일일 뿐 그 이상의 해석은 자기 개인에게 맡기고 속으로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자기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스스로 희생양이 되고 피해자가 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도덕적인 우위를 주장하고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을 변태 내지는 덜 떨어진 인간으로 몰아붙이는 언어폭력이었다.

몇일 간의 논쟁에서 '의견이 다른 상대를 설득할 가능성이 애초에 없는,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들을 결집 시키는 대내선전용 포스팅'을 많이 보았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쉽다. 사실에 대한 해석 권한을 홀로 독점할 자격이 있는 양 마음대로 전제를 정해서 일정한 형식 논리를 갖추면 된다. 거기다가 의견이 다른 쪽을 향한 조소와 호통을 섞어주면 된다. 설득의 가능성은 부쉬가 이슬람교로 개종할 정도의 확률이겠으나, 같은 편끼리 읽기에는 말도 되어 보이고 속도 후련하다.

'상징'이라고 하는 대단히 모호한 근거를 가지고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해석의 권리를 독점했다고 주장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불편했으며, 실상 정말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자각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소수'를 제외한 남성은 모두 잠재적 강간범으로 몰아붙이는 언어폭력은 부쉬의 예방적 자위권 행사 개념과 대체 무엇이 다르며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가?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는 꼴페미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사실 지금은 그 단어가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기에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불쌍하다.

by ουτις | 2009/09/25 21:42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 | 덧글(6)

꿀벅지와 죠리퐁

죠리퐁 논쟁을 다시 보는 기분인데 사람들이 저렇게 진지하게 열띈 논의를 하는 걸 보면 내가 오해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분은 죠리퐁 -_-;;;

사랑스러움을 달콤함에 빗대서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유구한 전통을 가진 일일진데 (허니나 슈거라고 애인을 부른다든지 허니문이라든지 꿀하라라든지 찾아보면 아마 줄줄이 나올텐데?) 꿀벅지라는 말을 들으면 저런 생각부터 드는 게 일반적인 거라고 이틀 전까지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같은 것을 보고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한 발칙한 생각을 갑자기 들고 나와서 외설 파문으로 끌고 가는 것이 옛날의 죠리퐁 파문을 생각나게 한다.

식스팩, 王자, 빨래판 등 이미 복근을 표현하는 수많은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등장한 '초콜릿 복근'이 단순히 모양에 대한 비유라는 어거지에 한참 웃은 게 그나마 소득이려나? 우연히도 초콜릿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 것 중 하나구나.


이글루스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벼.. 병신같지만 멋있어!'라는 말은 객관적으로는 거의 가치가 없는 일에 열의를 띄고 매달리는 일에 가장 어울린다는 말이 맞다. 이 논쟁 참으로 멋지다 ㅋㅋㅋ 나도 좀 멋있어 진건가? ㅋ

by ουτις | 2009/09/23 10:54 | 오늘 내 머릿속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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